솔직히 처음엔 그냥 한국판 좀비 블록버스터겠거니 했습니다. 팝콘이나 씹으며 두 시간 보내면 되겠다 싶었는데, KTX가 서울역을 출발하는 순간부터 극장 의자 손잡이를 놓지 못했습니다. 스크린을 빠져나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그 묵직한 여운, 지금도 선명합니다. 한국형 좀비 블록버스터가 가능하다는 증거제가 이 영화를 보러 갈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한국에서 좀비 영화가 제대로 될 수 있을까,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 걱정이 완전히 기우였습니다. 부산행은 좀비(zombie) 장르의 계보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품입니다. 여기서 좀비 장르란, 1954년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에서 비롯된 '바이러스나 외부 감..
연상호 감독 이름 석 자만 보고 개봉일에 바로 뛰어간 사람으로서, 솔직히 반도 이후 쌓인 불안감을 지우지 못한 채 극장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든 첫 생각은 이 감독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였습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던 군, 실제로 앉아서 보니 일반적인 평가와는 조금 다른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집단지성 설정이 만들어낸 진짜 공포일반적으로 좀비 영화의 공포는 수와 속도에서 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앉아서 봤는데, 군이 만들어낸 공포의 본질은 조금 달랐습니다. 처음엔 저도 별 기대 없이 감염자들이 기어 다니는 장면을 봤지만, 이들이 두 발로 일어서고 점액질을 통해 생각을 공유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등줄기가 서늘해지더라고요. 이 영화에서 핵심 설정은 바로 군집 지성(..
조직 생활을 하다 보면 위아래에서 동시에 치여 숨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이쪽 눈치를 보면 저쪽에서 칼이 들어오고, 저쪽을 달래면 이쪽이 목을 조여오는 상황. 저도 사회 초년생 시절 그런 구조 속에서 "어디에도 내 편이 없다"는 고독감에 밤마다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영화 아수라는 바로 그 감각을 스크린 위에 핏빛으로 옮겨놓은 작품입니다. 안남시라는 공간이 만들어내는 배경과 맥락영화는 재개발을 앞둔 가상의 도시 안남시를 무대로 시작합니다. 이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는 걸 저는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직감했습니다. 안남시는 도시 재생 사업, 즉 낙후된 지역을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권 다툼이 집약된 무대입니다. 여기서 도시 재생이란 단순히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이..
극장에서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흑백의 돌들이 박히는 순간마다 위태롭게 출렁이는 인물들의 생사를 보며 숨을 참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바둑판이 전쟁터가 되고, 한 수 한 수가 목숨과 직결되는 설정은 이 영화를 단순한 조폭 액션과는 전혀 다른 무게감으로 올려놓았습니다. 프로가 인정한 착수 동작, 집념의 결과물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처음부터 이상하게 눈이 간 것이 있었는데, 바로 정우성 배우의 손이었습니다. 돌을 집어 판에 내려놓는 그 동작이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묘한 긴장감을 품고 있어서였죠. 비하인드를 접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바둑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한 그가, 프로 사범들도 인정할 수준의 손동작을 만들기 위해 한동안 손에서 바둑돌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여기서 착수..
2006년 개봉한 영화 타짜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넘사벽 도박 영화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비하인드를 접했을 때, 그 유명한 대사 한 줄이 현장에서 즉흥으로 탄생했다는 걸 알고 한참 멍하니 있었습니다. 완성된 영화 뒤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파고들수록, 이 작품이 왜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지 조금씩 이해가 됐습니다. 플래시백 구조와 연출 의도 — 왜 시간을 뒤섞었나타짜의 가장 두드러진 연출 기법은 플래시백(flashback) 구조입니다. 플래시백이란 현재 시점에서 과거 장면을 삽입해 관객에게 맥락을 제공하는 편집 기법으로, 흔히 "시간 역행 편집"이라고도 불립니다. 최동훈 감독은 이 기법을 단순히 정보 전달 수단으로 쓴 게 아니라, 극적 긴장감을 설계하는 핵심 도..
국제시장을 처음 봤을 때 그냥 신파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1,400만이라는 숫자에 이끌려 극장에 들어갔다가 영화 내내 눈물을 쥐어짜이며 나왔는데, 막상 비하인드 영상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이 영화가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된 작품인지 뒤늦게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몇 가지 연출 선택에 대해서는 지금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흥남철수, 50년대 국제시장을 되살린 배경과 기술일반적으로 이런 대형 한국 영화는 주로 국내 세트장에서 찍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비하인드를 보며 가장 놀란 건 촬영 장소의 스케일이었습니다. 1950년 흥남철수 작전 장면은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300여 명의 배우만 섭외한 뒤 나머지 인파를 모두 VFX(시각 효과)로 채워 넣었습니다. VFX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활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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