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 하나를 보고 이렇게 오래 생각에 잠긴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전기 영화 《마이클》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 저는 처음 몇 초를 보고 나서 멈추고 다시 처음부터 돌려봤습니다. 녹음실의 공기, 작업 보드에 빽빽하게 붙은 메모들, 헤드폰을 쓴 채 조용히 앉아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 그게 무대 위의 문워크보다 더 강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스릴러와 빌리진, 그리고 녹음실의 집요함 어릴 때 동네 레코드 가게 앞을 지나가면 유리문 안쪽에서 낯선 영어 노래가 흘러나오곤 했습니다. 뜻도 모르면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노래들이 있었는데, 그게 마이클 잭슨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학교 장기자랑에서 누군가 어설프게 문워크를 따라 하면 교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됐지만, 그 웃음 속에는 묘한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자유로를 달리다 강 건너 북쪽이 유리창 하나 사이에 있다는 걸 실감했던 밤이 있었는데, 《강철비》를 보면서 그 느낌이 정확히 다시 살아났습니다. 핵과 쿠데타라는 거대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결국 남는 건 밥 먹고 잠자는 사람들 이야기라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단순한 첩보 액션이 아닌 이유입니다. 분단 구조가 만든 위기의 실제 얼굴《강철비》의 배경은 북한 내부 쿠데타(coup d'état)에서 시작합니다. 쿠데타란 기존 권력을 무력으로 탈취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영화에서는 이것이 단순히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한, 미국, 중국까지 끌어들이는 연쇄 위기로 번집니다. 정찰총국(북한의 대외 정보·공작 기관)의 리태안이 결국 쿠데타의 진짜 주역이었다는 반전은, 위기가 어느 한쪽의 일..
어쩔 수 없다는 해고 노동자가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차례로 제거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줄거리를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이게 웃기다고?" 싶었습니다. 근데 실제로 보고 나니, 웃기면서도 내내 마음 한쪽이 무거웠습니다. 그 불편함이 오래 남는 영화였습니다. 제로섬 게임에 갇힌 사람의 부조리한 범죄이 영화의 전제는 단순합니다. "사람은 넷, 자리는 하나." 주인공 만수는 25년간 다니던 제지 회사에서 해고된 뒤, 1년이 지나도 재취업에 실패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무섭도록 단순합니다. 경쟁자가 없으면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짚어야 할 개념이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입니다. 제로섬 게임이란 한쪽이 얻으면 반드시 다른 쪽이 잃는 구조, 즉 총합이 항상 0인..
갈 곳이 없다는 게 사람을 얼마나 무디게 만드는지, 저는 그날 처음 실감했습니다. 지인 소개로 큰 집 청소를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이상했습니다. 가구는 비쌌고 집은 넓었지만, 그 집에서 저는 내내 시계만 봤습니다. 영화 속 밀리가 윈체스터 저택에 발을 들여놓는 장면에서 그날 기억이 그대로 올라왔습니다. 비신뢰성 화자가 만드는 함정, 관객은 얼마나 속았나심리 스릴러 장르에서 자주 쓰이는 서사 장치 중 하나가 바로 비신뢰성 화자(Unreliable Narrator)입니다. 여기서 비신뢰성 화자란, 이야기를 이끄는 시점 인물이 정보를 왜곡하거나 잘못 해석하고 있어서 관객이 그대로 믿으면 안 되는 서술자를 말합니다. 이 영화는 밀리의 눈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국보를 보기 전에는 일본 전통예술을 소재로 한 잘 만든 드라마 정도를 기대했는데,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나도록 뭔가 이상하게 걸리는 감각이 계속 남았습니다. 아름답다는 말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마음 깊숙이 닿지 않는 이 거리감이 어디서 오는 건지 꽤 오래 생각했습니다. 가부키 미학, 인형화 된 인간의 아름다움 모노노아와어릴 때 엄마를 따라 전통 공연장에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대 위 사람들이 왜 저렇게 느리게 걷고, 왜 저렇게 과장되게 팔을 드는지 그때는 그냥 답답하게만 느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답답함이 사실 가부키 미학의 핵심을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나온 반응이었다는 걸 영화 국보를 보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일본의 문화예술 평론가 가라타..
아이 학교에서 작은 다툼이 생겼을 때, 처음으로 들리는 말은 대개 "장난이었대요"입니다. 제가 직접 그 자리에 있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상처받은 아이보다 빠져나갈 말이 먼저 나왔고, 어른들은 서로 눈치를 봤습니다. 저는 직접 이사 오면서 저희 아이가 학폭 피해자였기에 더욱더 마음 한편에 기억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폭력보다 무서운 것, 구조적 은폐 선호는 평범한 중학생이었습니다. 연락 문제로 부모를 속인 적 없는 아이였는데, 어느 날 밤 학교 옥상에서 추락한 채 발견됩니다. 학교 CCTV는 고장 나 있었고, 휴대폰과 일기장은 사라졌으며, 운동화는 옥상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여기서 드라마가 주목하는 건 폭력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 폭력이 어떻게 덮이는가, 바로 그 과정입니다.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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