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자유로를 달리다 강 건너 북쪽이 유리창 하나 사이에 있다는 걸 실감했던 밤이 있었는데, 《강철비》를 보면서 그 느낌이 정확히 다시 살아났습니다. 핵과 쿠데타라는 거대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결국 남는 건 밥 먹고 잠자는 사람들 이야기라는 것, 그게 이 영화가 단순한 첩보 액션이 아닌 이유입니다. 분단 구조가 만든 위기의 실제 얼굴《강철비》의 배경은 북한 내부 쿠데타(coup d'état)에서 시작합니다. 쿠데타란 기존 권력을 무력으로 탈취하는 행위를 뜻하는데, 영화에서는 이것이 단순히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한, 미국, 중국까지 끌어들이는 연쇄 위기로 번집니다. 정찰총국(북한의 대외 정보·공작 기관)의 리태안이 결국 쿠데타의 진짜 주역이었다는 반전은, 위기가 어느 한쪽의 일..
어쩔 수 없다는 해고 노동자가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차례로 제거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줄거리를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이게 웃기다고?" 싶었습니다. 근데 실제로 보고 나니, 웃기면서도 내내 마음 한쪽이 무거웠습니다. 그 불편함이 오래 남는 영화였습니다. 제로섬 게임에 갇힌 사람의 부조리한 범죄이 영화의 전제는 단순합니다. "사람은 넷, 자리는 하나." 주인공 만수는 25년간 다니던 제지 회사에서 해고된 뒤, 1년이 지나도 재취업에 실패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무섭도록 단순합니다. 경쟁자가 없으면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짚어야 할 개념이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입니다. 제로섬 게임이란 한쪽이 얻으면 반드시 다른 쪽이 잃는 구조, 즉 총합이 항상 0인..
솔직히 저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의 의미를 꽤 오랫동안 몰랐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입맛 없으면 투정하고, 밖에서 사 먹는 게 더 맛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영화 《넘버원》을 접하고 나서야 그 밥 한 끼가 얼마나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었는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집밥과 유한성 — 숫자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이 영화의 핵심 설정은 단순합니다. 주인공 하민의 눈에 어느 날부터 숫자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숫자는 엄마가 해준 밥을 먹을 때마다 하나씩 줄어들고 결국 0이 되면 엄마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좀 작위적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이 장치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른바 서사적 알레고리(Narr..
솔직히 처음엔 그냥 성장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사춘기 소년이 촌스러운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이야기, 어디서나 볼 법한 설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 이름 하나에 제주4·3이라는 역사의 무게가 얹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저도 모르게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름의 의미, 그게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다저도 어릴 때 제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 하필 이렇게 지었을까, 다른 이름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 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영화 속 영웅이 개명(改名)을 원하는 이유를 따라가다 보니, 저의 그 투정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 새삼 부끄러워졌습니다. 개명이란 단순히 불리고 싶은 이름을 고르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
층간소음 민원은 2024년 기준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연간 10만 건 이상 접수됩니다. 이 숫자를 보고 나서야 영화윗집 사람들이 왜 하필 이 소재를 골랐는지 납득이 됐습니다. 처음엔 그냥 가벼운 이웃 소동극이겠거니 했는데, 저도 아파트에 살면서 밤마다 윗집 쿵쿵 소리에 혼자 신경 곤두세웠던 사람이라 첫 장면부터 남 이야기 같지가 않았습니다 층간소음이라는 익숙한 출발점영화는 아랫집 부부가 윗집의 생활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소리가 한 번 들리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아닌 소리에도 "또 시작이네" 하며 과민 반응하게 되는 심리, 저도 경험했기에 이 장면에서 괜히 몸이 굳어졌습니다. 층간소음 문제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이웃 간 관계를 뒤틀어 놓는다는 건 이미 여러 연구가 지..
북한 보위부가 예수쟁이를 잡아들이는 곳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그 보위부가 오히려 찬양단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이 설정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게 진짜 영화 맞아?' 싶었습니다. 대북 제재로 외화벌이가 막힌 북한이 2억 달러의 국제 지원을 받으려고 가짜 기독교 부흥회를 준비하는 영화, 신의악단 이야기입니다. 가짜 찬양단, 그 설정이 단순한 코미디가 아닌 이유일반적으로 북한을 소재로 한 작품은 탈북 드라마나 첩보물에 치우쳐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 공식이 완전히 깨지는 걸 직접 느꼈습니다. 영화의 출발점은 명확합니다. 국제 기독교 연맹 NGO(비정부기구)가 평양에 교회 두 곳을 짓고, 자체 감사단이 현장에서 부흥회를 직접 참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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