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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다 리뷰 (부조리, 노동영화, 블랙코미디)

info202620586 2026. 5. 23. 15:56

 

 

어쩔 수 없다는 해고 노동자가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차례로 제거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줄거리를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이게 웃기다고?" 싶었습니다. 근데 실제로 보고 나니, 웃기면서도 내내 마음 한쪽이 무거웠습니다. 그 불편함이 오래 남는 영화였습니다.

 

제로섬 게임에 갇힌 사람의 부조리한 범죄

이 영화의 전제는 단순합니다. "사람은 넷, 자리는 하나." 주인공 만수는 25년간 다니던 제지 회사에서 해고된 뒤, 1년이 지나도 재취업에 실패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무섭도록 단순합니다. 경쟁자가 없으면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짚어야 할 개념이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입니다. 제로섬 게임이란 한쪽이 얻으면 반드시 다른 쪽이 잃는 구조, 즉 총합이 항상 0인 경쟁 방식을 말합니다. 만수는 세상을 이 구도로만 봅니다. 자리가 두 개로 늘 수도 있고, 다른 직종으로 전업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그의 머릿속에 없습니다. 그 좁은 시야가 비극의 출발점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불편했던 이유가 바로 그 지점이었습니다. 저도 한동안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힘들어지면 그 말 뒤로 숨어버리면 잠깐은 편해집니다. 내가 못난 게 아니라 상황이 그런 거라고 믿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만수를 보면서 그 말이 얼마나 쉽게 핑계가 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영화가 더 영리한 건, 이 범죄 구조 자체가 철저히 부조리하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만수가 먼저 제거하는 두 사람, 법무와 시조는 파피루스 회사 면접에서 각각 1등과 2등을 한 인물입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 두 사람은 이미 파피루스에 합격해 있었습니다. 만수가 노리는 자리, 즉 선출이 일하고 있는 문재지의 자리를 원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만수는 죽일 필요도 없는 사람을 미리 죽이고, 존재하지도 않던 자리를 억지로 만들기 위해 또 한 명을 죽입니다. 이 얼마나 뒤틀린 구조입니까.

이 아이러니가 단순한 범죄 스릴러와 이 영화를 가르는 핵심입니다. 2024년 한국고용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50대 이상 중장년 구직자의 재취업 소요 기간은 평균 11개월을 넘습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https://www.keis.or.kr)). 만수의 절망이 단순히 개인의 무능이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 구조적 피해자라는 사실이 범죄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것도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고용주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해고를 결정한 사람이 아니라, 같은 처지의 노동자끼리 싸우는 구조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이른바 노노갈등입니다. 노노 갈등이란 고용주 대 노동자의 수직적 갈등이 아니라, 노동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평적 충돌을 의미합니다. 이 구도가 더 처연한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만든 진짜 원인은 끝내 화면 밖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만수가 세 번의 살인을 거치면서 점점 더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 첫 번째 살인: 끝까지 신분을 숨기고 다른 사람으로 위장
- 두 번째 살인: 이름은 밝히지 않지만 자신의 처지를 고백
- 세 번째 살인: 이름, 경력, 전 직장까지 스스로 밝힘

이 흐름은 단순히 배짱이 두꺼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점점 범행의 주체로 인정해가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구조가 가장 소름 돋았습니다.

낙원의 상실과 복원, 그리고 그 이후에 남는 것

영화의 오프닝은 완벽합니다. 전원주택 마당에서 장어를 구워 먹고, 가족 여섯이 둥글게 껴안는 장면. 만수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후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낙원 상실의 서사로 읽힙니다. 이 집, 이 가족, 이 직업을 지키기 위해 그가 벌이는 한바탕 사투가 영화 전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집에 얽힌 이야기가 영화에서 가장 무거운 층위라고 생각합니다. 만수가 사는 전원주택은 원래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고, 구제역 같은 전염병으로 2만 마리의 돼지를 생매장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이후 아버지는 창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만수는 아홉 살 때 그 장면의 그늘 속에서 자랐고, 성인이 되어 그 집을 다시 사들입니다.

집을 되찾은 만수가 처음 한 일은 창고를 없애고 그 자리에 온실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공간을 삶의 공간으로 덮으려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온실 아래, 그 집의 나무 아래에 계속 무언가가 묻힙니다. 아들이 훔친 핸드폰이 묻히고, 시조의 시신이 묻힐 가능성이 암시되고, 2만 마리의 돼지가 이미 그 근처 땅 어딘가에 묻혀 있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로 이어지는 3대의 비밀이 모두 나무 아래에 응축되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개념이 필모그래피(filmography) 내 반복 모티프, 즉 감독이 여러 작품에 걸쳐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이미지나 주제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에서도 누군가를 관찰하다 감정이 생겨나는 구조를 썼습니다. 이 영화에서 만수가 법 모를 죽이기 위해 관찰하다가 오히려 그의 부부 관계를 자신에게 투영하는 장면이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제가 직접 두 영화를 비교해 보니, 이 관찰과 이입의 구조가 박찬욱 감독 특유의 문법처럼 느껴졌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표면적으로 해피 엔딩입니다. 완전 범죄에 성공하고, 집도 지키고, 가족도 곁에 있고, 재취업도 이룹니다. 그러나 그 이후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내 미리는 남편의 범행을 짐작하는 눈치이고, 아들은 아버지를 의심합니다. 딸은 처음으로 첼로를 연주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출근하고 없습니다. 9년간 지켜온 금주를 깬 상태이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낙원을 복원했지만, 그 안에는 이전과 다른 침묵이 깔려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만수는 제지롤을 나무 막대로 톡톡 두드립니다. 이제는 AI 소등 시스템이 공장을 운영하는 시대라 그 행위 자체가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요. 소등 시스템(AI 기반 자동화 운영 프로그램)이란 인간 노동력을 AI로 대체해 인력을 최소화하는 공장 운영 방식입니다. 불이 하나씩 꺼지는 마지막 장면은 그가 다시 해고될 미래를 시각적으로 예고합니다.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처음으로 돌아왔을 뿐입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 따르면, 사회 문제를 다룬 한국 영화는 국제 영화제 수상 이후 국내 관객 수가 평균 40% 이상 증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https://www.kofic.or.kr)〈어쩔 수 없다〉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이유도 이 보편성에 있을 겁니다. 해고, 재취업, 가족 붕괴, 중년 남성의 불안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과연 어쩔 수 없었던 걸까"라는 질문이 오래 남았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때로 가장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지만, 가장 편리한 면죄부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그 경계 어딘가에서 관객을 오래 붙들어 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