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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 (학교폭력, 방관자 효과, 가해자 부모)

info202620586 2026. 5. 22. 06:07

 

 

아이 학교에서 작은 다툼이 생겼을 때, 처음으로 들리는 말은 대개 "장난이었대요"입니다. 제가 직접 그 자리에 있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상처받은 아이보다 빠져나갈 말이 먼저 나왔고, 어른들은 서로 눈치를 봤습니다. 저는 직접  이사 오면서 저희 아이가 학폭 피해자였기에  더욱더  마음 한편에 기억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폭력보다 무서운 것, 구조적 은폐

 

선호는 평범한 중학생이었습니다. 연락 문제로 부모를 속인 적 없는 아이였는데, 어느 날 밤 학교 옥상에서 추락한 채 발견됩니다. 학교 CCTV는 고장 나 있었고, 휴대폰과 일기장은 사라졌으며, 운동화는 옥상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여기서 드라마가 주목하는 건 폭력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 폭력이 어떻게 덮이는가, 바로 그 과정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개념이 방관자 효과입니다. 방관자 효과란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책임감을 덜 느끼고 개입을 피하게 되는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타네가 1968년에 처음 명명한 개념으로, 학교폭력 현장에서도 구조적으로 작동합니다. 드라마 속 가해 학생 무리는 "다들 있었으니까"라는 이유로 각자의 책임을 희석시켰고, 어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학교폭력 피해 경험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피해 학생의 절반 이상이 주변 친구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출처: 교육부](https://www.moe.go.kr)). 이 수치가 말해주는 건 피해자가 약해서가 아니라, 말했을 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선호가 받지 못한 전화, 꽃을 들고 돌아온 발걸음, 아빠에게 세 번이나 걸었던 전화. 저는 그 장면들이 소리 없는 SOS였다고 봅니다.

드라마가 더 집요하게 파고드는 건 2차 가해의 구조입니다. 2차 가해란 피해자가 실제 폭력 이후에 수사 과정이나 주변 반응으로 인해 추가적인 심리적 피해를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찰은 자살 시도로 결론을 내리려 하고, 학교는 CCTV 고장을 노후화 탓으로 돌립니다. 가해자 부모들은 "쌍방 폭행"이라는 말을 꺼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진짜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실제 비슷한 상황을 옆에서 봤을 때도 피해자 가족이 오히려 "예민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속 가해 학생들이 벌인 폭력의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신체 폭행을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
- 폭행을 직접 가하지 않은 학생이 설계자 역할을 하며 주도한 것
- 피해 학생의 사고 이후에도 가해자들이 증거 은닉과 진술 조율을 시도한 것
- 부모들이 자녀의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사건을 축소하고 덮는 쪽을 선택한 것

이 구조가 불편한 이유는 특별히 나쁜 어른들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말, 그 말이 잘못된 방향으로 작동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가깝습니다.

어른의 사랑이 괴물을 만들 때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오래 멈춘 장면은 아버지 오진표가 아들 준석에게 거짓말의 방향을 설계해 주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넌 우정을 지키려고 했을 뿐"이라고 말하며 죄책감을 씻어냅니다. 어른의 언어로 포장된 이 가스라이팅은, 쉽게 말해 아이가 스스로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인지를 왜곡하는 과정입니다. 결과적으로 준석은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라 조종자였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더 정교한 거짓말을 배워 갑니다.

반면 은주는 다릅니다. 그는 아들의 범행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현장을 지웁니다. 운동화를 벗기고, 매듭을 다시 묶고, 교복 단추를 치웁니다. 그 선택의 무게는 이후 매 장면에서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쌓입니다. 저는 은주라는 인물이 오진표보다 오히려 더 비극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학교폭력 가해자 재범률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초기 대응에서 적절한 책임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유사 행동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됩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https://www.nypi.re.kr)). 제 경험상 이건 수치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부모가 먼저 "어떻게 빠져나오느냐"를 가르치면, 아이는 반성이 아니라 회피를 배웁니다. 그 차이가 결국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남습니다.

드라마는 소시오패스적 성향이라는 표현을 준석에게 사용합니다. 소시오패스란 반사회적 성격 장애의 일종으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도구화하는 성향을 말합니다. 준석이 처음부터 그런 아이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드라마는 그 성향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아버지가 직접 만들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게 이 작품이 전하는 가장 무거운 메시지라고 봅니다.

일부에서는 이 드라마가 가해자 부모를 너무 악인처럼 묘사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봐온 현실에서는 오히려 드라마보다 더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작품이 과장처럼 보인다면, 그건 우리가 그만큼 운이 좋았거나 가까이서 보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쉽게 잊히지 않는 작품입니다. 폭력보다 더 오래 남는 건 그 폭력을 둘러싼 어른들의 선택이었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난 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한 번쯤 물어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의 역할은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