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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쌀밥 한 그릇이 무너뜨린 것들

낯선 오사카 땅에 첫발을 디딘 선자가 형수 경희의 부엌에서 흰쌀밥을 마주하는 장면, 저는 그 순간 예상치 못하게 목이 메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타지에서 고향 음식을 갑작스럽게 만났을 때 그 감정이 얼마나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선자에게 그 밥 한 그릇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차려 준 밥상의 기억이었을 겁니다.

드라마가 포착한 재일조선인(在日朝鮮人)의 삶은 그 감동의 여운을 곧바로 냉혹한 현실로 끌어당깁니다. 재일조선인이란 일제강점기 전후로 일본으로 이주하거나 강제 징용되어 정착한 한반도 출신 사람들과 그 후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드라마 속 조선인 집결 지구의 골목은 전기가 켜진 밤거리와는 달리 불안과 결핍이 가득했고, 요셉이 털어놓는 "처음 한 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라는 말은 그 공간이 얼마나 촘촘하게 차별과 빈곤으로 짜여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 대목에서 드라마는 디아스포라(Diaspora) 서사의 전형을 충실하게 따릅니다. 디아스포라란 고향을 떠나 타국에 흩어져 살면서도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는 집단 또는 그 경험 자체를 뜻하는 개념입니다. 선자가 오사카에서 맞닥뜨리는 냉대와 소외는 단순한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국가라는 보호막을 잃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치러야 했던 집단적 고통의 단면이었습니다.

거대 담론과 남겨진 자들의 무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파칭코가 이렇게까지 남성 인물들의 이념적 선택이 여성과 아이들에게 전가하는 고통을 냉정하게 응시할 줄은 몰랐습니다. 요셉은 동생 이삭의 결혼 축의금 명목으로 고리대금업자에게 빚을 지고, 정작 빚쟁이들이 들이닥쳤을 때는 자존심을 앞세워 선자와 경희를 위험 속으로 내몰았습니다.

이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혐의로 경찰에 끌려가는 장면은 드라마의 가장 서늘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치안유지법이란 1925년 일본 제국이 제정한 법률로, 국체 변혁이나 사유재산 제도 부정을 목적으로 하는 일체의 결사·운동을 처벌하는 도구로 쓰였습니다. 쉽게 말해 신사참배 거부나 민족 운동 참여만으로도 구금과 고문의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삭이 붙잡힌 이유는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자존감을 심어 주고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설교를 했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제국의 눈에 충분한 위협이었습니다.

파칭코가 보여 주는 재일조선인의 역사적 경험은 학술적으로도 충분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 직후 발생한 조선인 학살은 그 비극의 정점이었는데, 당시 유언비어에 의해 수천 명의 조선인이 자경단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출처: 동북아역사재단](https://www.nahf.or.kr)). 드라마가 시간을 거슬러 1923년 요코하마 장면을 삽입하는 것은 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서사의 뿌리로 삼겠다는 분명한 의도입니다.

제 경험상, 이 지점에서 드라마를 비판적으로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사가 전개될수록 이삭의 저항이나 조선인 청년의 사회주의적 선동이 일종의 낭만적 광채를 띠는 반면, 그 선택의 대가를 오롯이 짊어지는 것은 선자와 경희라는 여성들입니다. 거대 담론을 좇는 남성들의 서사가 결과적으로 또 다른 형태의 젠더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하는 측면은 분명히 짚어야 할 대목입니다.

선자의 김치와 진짜 저항의 의미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몰입을 느꼈던 장면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선자가 새벽 시장에서 배추를 사다가 김치를 담그는 장면을 고르겠습니다. 남편이 경찰에 잡혀가고, 빚은 남아 있고, 아이들은 먹여야 하는 그 절박한 밤에 선자가 택한 것은 눈물도 분노도 아니라 배추를 치대는 두 손이었습니다.

시장에서의 첫 장사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김치 냄새를 이유로 자리를 주지 않는 상인들, 문전박대하는 시선들. 그 장면에서 제가 느낀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입이 아니었습니다. 차별이 얼마나 일상적인 언어로 작동하는지를 드라마가 아주 정확하게 짚어낸다는 생각에서 오는 분노였습니다.

선자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생존 방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눈으로 다른 장사꾼들을 관찰하며 요령을 익혔습니다
- 자리를 내어 준 고마운 상인 옆에서 차근차근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 어머니에게 배운 김치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내세웠습니다

이 장면들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선자의 행동이 어떤 이념적 선언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사회주의도, 민족주의도 아닌 그냥 오늘 아이들을 먹이기 위한 몸의 움직임. 그것이 오히려 가장 원초적이고 강인한 형태의 저항임을 드라마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삭이 한 대사, "두려움이 내 몸을 멋대로 주무르게 놔두면 나중에 내 몸의 윤곽조차 낯설어질 것"이라는 말은 제게 오래 남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사의 진정한 실천자는 이삭 자신이 아니라 배추를 치대던 선자였습니다.

파칭코가 남긴 질문, 1938년 오사카 이후

시리즈 파칭코는 공개 이후 지속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 드라마를 넘어, 국가 간 이주와 정체성 문제를 다루는 이민 장르의 수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민 서사란 고향을 떠난 이들이 낯선 사회에서 정체성과 생존을 동시에 협상하는 과정을 그린 서사 양식을 의미합니다. 파칭코는 거기에 제국주의와 젠더, 계급이라는 층위를 겹쳐 놓으며 이야기의 밀도를 훨씬 높입니다.

노아가 태어나는 장면 직후, 한수가 전당포에서 자신의 시계를 되찾는 장면은 제 경험상 파칭코 특유의 서술 방식을 가장 잘 보여 주는 편집이었습니다. 한수의 시계는 선자에게 빚을 갚을 수 있게 해 준 도구였지만, 동시에 선자와 한수 사이에 여전히 끊어지지 않은 무언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한수가 "약한 놈이랑 결혼했으니 앞으로 대가를 톡톡히 치를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순간, 이 이야기가 앞으로 얼마나 더 가혹해질지가 예감되었습니다.

재일조선인의 역사적 경험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문제입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현재 일본 내 등록 외국인 중 한국·조선 국적자는 수십만 명에 달하며, 이들의 법적 지위와 사회적 처우는 여전히 복잡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출처: 일본 법무성 출입국재류관리청 https://www.moj.go.jp파칭코는 그 긴 역사의 한 단면을 드라마라는 형식으로 가장 정직하게 복원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파칭코 시즌2가 궁금하시다면 지금 바로 애플 TV 플러스에서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선자의 이야기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살아남으려 했던 모든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한동안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CwCkkOqz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