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북한 보위부가 예수쟁이를 잡아들이는 곳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그 보위부가 오히려 찬양단을 직접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이 설정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게 진짜 영화 맞아?' 싶었습니다. 대북 제재로 외화벌이가 막힌 북한이 2억 달러의 국제 지원을 받으려고 가짜 기독교 부흥회를 준비하는 영화, 신의악단 이야기입니다.

 

가짜 찬양단, 그 설정이 단순한 코미디가 아닌 이유

일반적으로 북한을 소재로 한 작품은 탈북 드라마나 첩보물에 치우쳐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 공식이 완전히 깨지는 걸 직접 느꼈습니다.

영화의 출발점은 명확합니다. 국제 기독교 연맹 NGO(비정부기구)가 평양에 교회 두 곳을 짓고, 자체 감사단이 현장에서 부흥회를 직접 참관하는 조건으로 2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합니다. 여기서 NGO란 정부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민간단체를 뜻하는데, 국제사회에서는 인도적 지원 창구로 자주 활용됩니다. 북한으로서는 대북 제재 국면에서 이 돈이 얼마나 절실했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입니다.

문제는 북한에서 기독교는 '반동 종파', 즉 사상적 해악으로 규정된다는 점입니다. 반동 종파란 체제를 위협하는 이념적 집단으로 분류해 탄압 대상으로 삼는 개념인데, 그걸 탄압하던 보위부가 오히려 찬양단을 결성하고 성경 교육까지 받아야 하는 아이러니가 이 영화의 핵심 긴장감입니다.

보위부 오 부장 리은평이 악단을 꾸리는 과정이 또 걸작입니다. 유명 악단은 신분 노출 우려로 쓸 수 없으니, 당 처벌을 받아 변방으로 쫓겨난 사람들로 팀을 채웁니다. 지휘자, 아코디언 연주자, 바이올린 주자, 기타리스트, 베이스 연주자까지 하나같이 '문제가 있어서' 밀려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악단의 이름이 신의악단인 게 묘하게 이중적입니다. '신(神)의 악단'이면서 동시에 '신의를 저버린 자들의 악단'이기도 하니까요.

이 영화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남북 문화 콘텐츠 소비 문제도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 연구에 따르면 북한 내부에서도 한류 콘텐츠 유통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주민들의 내면 변화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됩니다([출처: 통일연구원](https://www.kinu.or.kr)). 영화 속 만수가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를 몰래 흥얼거리는 장면은 그 현실을 꽤 사실감 있게 건드립니다.

임영웅 사랑은 늘 도망가

 

저는 이 지점에서 영화가 단순한 풍자극을 넘어선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거짓으로 시작한 것은 끝까지 거짓'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제가 이 영화를 따라가면서 느낀 건 정반대였습니다.

반복의 힘은 생각보다 셉니다. 처음엔 임무 완수를 위해 찬양 가사를 외우고 율동을 맞추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그 가사 속 단어들이 자기 삶과 겹치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인지적 정교화(cognitive elaboration)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의미 없이 반복하던 것이 자신의 감정과 연결되면서 진짜 의미를 갖게 되는 현상입니다.

박교순이 연습 도중 조금씩 변화하는 장면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처음에 이 임무를 부장 자리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10년째 결혼을 미루며 기다려 온 연인에게 자동차 꽃장식을 해서 데리러 가겠다는 소박하고도 간절한 꿈이 있었으니까요. 저는 그 장면에서 이 사람이 북한 보위부 요원이라는 사실보다 '10년을 기다리게 한 미안한 남자'로 먼저 다가왔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임영웅의 '사랑은 늘 도망가'가 울려 퍼지는 연습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제 경험상 가장 오래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연인에게 프러포즈 한 번 제대로 못한 만수의 심정이, 국적도 체제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똑같이 번지는 장면이었거든요. 음악의 보편성(universality of music)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언어와 이념을 초월하여 감정을 전달하는 음악의 특성을 말합니다. 이 장면이 그걸 가장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김태성이라는 인물도 놓치면 아깝습니다. 그는 찬양팀 안에서 내부 감시를 병행하는 인물인데, 자신이 직접 처단한 이가 사촌형이라는 소문이 도는 캐릭터입니다. 그런 그가 노래를 통해 무엇을 느끼는지, 영화는 섣불리 답을 주지 않습니다. 저는 이 열린 결말식 처리가 오히려 현실감을 높인다고 봅니다. 실제로 분단 상황에서 체제 내부 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다룬 연구에서도 이념이 음악이나 예술 앞에서 균열되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보고된 바 있습니다([출처: 북한인권정보센터](https://www.nkdb.org)).

다만 한 가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위부 요원들이 임무를 수행하면서 종교적 숭고함으로까지 나아가는 과정에 대해, 심리적 개연성을 더 촘촘하게 다뤘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2주라는 시간 안에 사상이 균열되기까지의 내면 묘사가 조금 더 촘촘했다면 감동이 배가됐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신의악단 핵심포인트 질문

의악단에서 눈여겨볼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대북 제재 국면에서 탄생한 '2억 달러짜리 위장 부흥회'라는 파격적 서사 구조
- 보위부 요원들이 찬양과 성경을 반복하면서 겪는 내면의 균열과 변화
- 임영웅의 노래를 통해 남북의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지점
- 탈북을 암시하는 악단 내부의 또 다른 긴장 구조

 

신의악단은 결국 이 질문을 남깁니다. 거짓으로 시작한 노래가 진심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은 이미 달라진 것이 아닐까요. 저는 극장을 나오면서도 그 질문이 계속 따라왔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도 모르게 영화 속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저는 이렇게 감상평 남길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체제와 이념을 다루는 영화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관람을 했어 , 예상보다 훨씬 따뜻한 영화를 만나게 되어 2025년 마무리를 따뜻하게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