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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엔 그냥 성장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사춘기 소년이 촌스러운 이름을 바꾸고 싶다는 이야기, 어디서나 볼 법한 설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 이름 하나에 제주4·3이라는 역사의 무게가 얹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저도 모르게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름의 의미, 그게 단순한 호칭이 아니었다

저도 어릴 때 제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왜 하필 이렇게 지었을까, 다른 이름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 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영화 속 영웅이 개명(改名)을 원하는 이유를 따라가다 보니, 저의 그 투정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 새삼 부끄러워졌습니다. 개명이란 단순히 불리고 싶은 이름을 고르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영웅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배경에는 믿기 힘든 사연이 있습니다. 1949년 제주에서 토벌대가 마을을 휩쓸 때, 남자아이들이 집중적으로 희생되었습니다. 그 공포 속에서 부모들은 아들에게 여자아이 같은 이름을 붙여 죽음의 신이 지나쳐 가길 빌었다고 합니다. 이름이 일종의 위장술(僞裝術)이 된 것입니다. 위장술이란 자신의 정체를 숨겨 위험을 피하는 생존 전략을 뜻하는데, 그 전략이 이름 석 자에 담겨야 했던 시절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눌렀습니다.
이름을 싫어하던 소년이 그 이름의 내력을 알아가는 과정이 뭉클했던 건, 단지 영화적 감동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가 자식에게 건네는 이름 하나에 얼마나 많은 간절함과 공포와 기도가 담겼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었으니까요. 이름이란 누군가의 기억과 소망이 응축된 흔적일 수 있다는 걸,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봤습니다

제주4·3, 역사를 알아야 영화가 더 아프다

제주4·3사건이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서 벌어진 무장 봉기와 그에 대한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대규모로 희생된 사건을 말합니다. 2003년 정부 공식 진상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제주 인구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하는 2만 5천에서 3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출처: 제주4·3평화재단에 따르면 이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공론화가 억압되었던 비극 중 하나로, 피해자들의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화에서 엄마 정순이 햇빛이 강하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처음엔 단순한 공황장애 증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황장애란 특정 자극에 의해 갑작스러운 극도의 공포 반응이 일어나는 심리적 증상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1949년 마을이 불타던 날, 연기 속에서 도망치지 못한 기억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 순간, 그 장면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습니다. 좋은 날씨가 공포의 방아쇠가 된다는 설정은 역사의 상처가 얼마나 깊이 몸 안에 새겨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이 영화를 역사 다큐멘터리로 보는 시각도 있고, 반대로 역사 지식 없이는 감정선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는 걸 압니다. 실제로 제주4·3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면 영화 속 상징들이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그 낯섦이 관객에게 찾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설명서가 되는 것보다, 질문을 남기는 편이 더 오래 남거든요.
영화 속 학교 폭력과 국가 폭력을 겹쳐 놓은 연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전학생 경태가 교실을 장악하는 방식, 그 권력 구조 안에서 영웅이 선택을 강요받는 장면은 과거 제주에서 벌어진 폭력의 구조와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폭력은 시대를 바꿔도 비슷한 문법으로 반복된다는 감독의 시선이 여기서 가장 날카롭게 드러났습니다.
이 영화와 함께 제주4·3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아래 자료들이 도움이 됩니다.

제주도 여행을 몇번 다녀왔어도 제주4.3을 알지도 못했던 이야기 인데 영화를 계기로 9월 제주여행에는 다녀올 계획입니다.

제주4·3평화재단 공식 사이트에서 진상 보고서 전문과 희생자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공식 진상 조사 보고서는 토벌대·무장대·미군정 모두에게 책임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국가기록원에는 당시 제주 관련 행정 문서와 피해 기록 일부가 디지털 아카이브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트라우마는 어떻게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가

 

영화를 보고 나서 며칠간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직접 겪지 않은 고통이 자식에게, 또 손자에게 어떻게 이어지는 걸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세대 간 트라우마 전달(Intergenerational Trauma Transmission)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부모 세대가 겪은 극심한 충격이 직접적인 경험 없이도 자녀의 심리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입니다.
저는 부모님 세대가 힘든 일을 겪어도 자식 앞에서는 괜찮은 척 살아온 모습을 많이 봐왔습니다. 그 침묵이 무관심이 아니라 보호하려는 의도였다는 걸 나중에야 이해했고요. 정순이 아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겁니다. 그러나 억압된 기억(抑壓記憶)이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억압된 기억이란 의식에서 차단되었지만 무의식 속에 남아 행동과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기억을 뜻합니다. 정순의 발작이 바로 그 증거였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역사극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쓰면서도, 결국은 한 엄마와 아들 사이의 이름을 둘러싼 이야기로 좁혀지거든요. 잊힌 역사를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살아남은 사람의 침묵과 그 침묵을 이어받은 다음 세대의 혼란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방식입니다.
제작 방식도 이 영화의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거대 자본 없이 시민 9,778명이 텀블벅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을 통해 약 4억 원을 모았습니다. 크라우드펀딩이란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 소액을 모아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텀블벅 극영화 역대 최대 모금 기록이라고 합니다. 엔딩 크레딧에 1만 명에 가까운 후원자들의 이름이 흐르는 동안 관객들이 눈물을 쏟았다는 건, 이 영화가 단지 스크린 위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이름을 되찾고 싶었던 사람들의 염원이 모인 작품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2025년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엔딩 크레딧 내내 10분간 기립 박수가 이어진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저는 제 이름을 한 번 다시 속으로 불러봤습니다. 부모님이 왜 이 이름을 골랐는지, 그 안에 무슨 바람이 담겨 있는지, 한 번도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는 게 그때 처음 걸렸거든요. 역사를 다룬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게 조금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게 이 영화의 진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혼자 보기엔 너무 크고 무거운 감정이 있는 영화입니다